리차드 커티스 by malick

“사랑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 <러브 액츄얼리>의 리차드 커티스
글 : 임종찬 기자 200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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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노팅 힐><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공통점은? 첫째 휴 그랜트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둘째 영국의 제작사 워킹 타이틀 작품. 그리고 셋째 리차드 커티스가 각본을 맡았다는 점이다. 이들 영화를 통해 영국식 로맨틱 코맨디의 전형을 만들어낸 리차드 커티스가 이번 겨울에는 자신의 감독 데뷔작 <러브 액츄얼리>를 들고 찾아왔다. <러브 액츄얼리>에는 휴 그랜트는 물론, 콜린 퍼스에 리암 닐슨, 엠마 톰슨, 알란 릭맨, 로라 리니, 카이라 나이틀리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이들을 한 영화에 캐스팅 할 수 있었던 첫번째 요소가 바로 리차드 커티스가 쓴 멋진 각본의 힘이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부터 <브리짓 존스의 일기>까지 이제까지 자신이 각본을 맡았던 로맨틱 코미디들을 모두 합친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리차드 커티스는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9개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사실 사랑은 어디에나 있음(Love actually is all around)'을 멋지게 증명해 보인다. 어렸을 적부터 사랑에 매혹되어 있었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마술사 리차드 커티스와 그의 영화들에 대해 알아보자.

    사업차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했던 아버지로 인해 리차드 커티스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옥스포드 대학 영문과를 다니던 시절 커티스는 '미스터 빈' 로완 앳킨슨을 만나 단짝 친구가 된다. 대학 졸업 후 두 사람은 1979년부터 82년까지 BBC에서 방영된 "Not the Nine O'clock News"의 각본을 함께 쓰며 연예계 데뷔를 하게 된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블랙 에더 Black Adder", "미스터 빈" 등의 히트 TV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고 특히 "미스터 빈"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기도 한다. 리차드 커티스는 1989년 제프 골드브럼과 엠마 톰슨이 주연을 맡은 <톨 가이 Tall Guy>를 통해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한다. 그리고 1993년 워킹 타이틀과 리차드 커티스, 그리고 휴 그랜트와의 첫 콤비작인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 탄생한다.

    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를 이은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들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결국 결혼에 성공하는 장르의 법칙을 충실히 지켜왔다. 그러나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리차드 커티스는 이런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와는 색다른 사랑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주인공은 귀엽지만 별볼일 없는 30대이고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소심남이다. 거기에 주위의 친구들은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해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는 독신남녀들이다. 영화의 결말 또한 해피 엔딩이긴 하지만, 결혼이 이루어지는 대신, 남자는 여자에게 결혼없이 함께 살자는 제안으로 마무리 된다. 리차드 커티스는 어느 날 자신이 무려 72주를 친구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바탕으로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구상했다고. 그리고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왜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지 않는냐고 묻는 부모님에 대한 커티스의 대답이기도 하다. 리차드 커티스는 엠마 프로이드와 함께 살며 네 명의 아이를 가졌지만 아직까지 결혼은 하지 않고 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리차드 커티스 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 휴 그랜트를 탄생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리차드 커티스가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워킹 타이틀 제작으로 리차드 커티스 삼부작과 사촌과도 같은 영화 <어바웃 어 보이>까지 휴 그랜트는 같은 배역을 변주해 나가면서 로맨틱 코미디의 왕자가 되었다. 휴 그랜트에 대해 리차드 커티스는 자기가 쓴 각본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배우가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커다란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고 여기에 휴 그랜트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이후 순탄한 연기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커티스가 자신을 살려주었다면서 이에 화답했다.

    <노팅 힐>은 사실상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속편과도 같은 영화다. 같은 캐릭터들이 계속 등장하는 속편은 아니지만, 같은 제작진이 모여 비슷한 내용과 분위기로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택한 작품이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주요 배역들은 <노팅 힐>에서 변주되어 나타난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캐리와 마찬가지로 <노팅 힐>의 여주인공 안나는 미국 여자이고 작은 키에 활달한 스텔라는 허니로 연결된다. 그리고 우아한 영국 여인 이미지의 피오나 배역은 벨라가 넘겨 받는다. 여기에 전편에서 로완 앳킨슨이 첫 주례를 맡아 온갖 실수를 저지르는 신부, 목사로 잠깐 등장해 웃음을 선사한 괴짜 캐릭터는 이번에는 주인공의 친구 스파이크로 변신해 영화 전편을 누비며 활약을 하게 된다.

    실제로 영국의 노팅 힐에서 살고 있는 리차드 커티스는 만약 자신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돈나와 같은 엄청난 스타를 친구들의 모임에 데려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고 여기서 영감을 얻어 초현실적이지만 멋진 로맨틱 코미디 <노팅 힐>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할리우드 일급 배우인 줄리아 로버츠가 캐스팅 되면서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보다 훨씬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로 완성되었고 결과적으로 <노팅 힐>은 리차드 커티스 영화들 중 가장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와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노팅 힐> 이후 리차드 커티스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톨 가이>에서 자신의 각본 작업을 도왔던 헬렌 필딩의 베스트셀러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각본 작업에 참여한다. 이번에는 작가인 헬렌 필딩, 그리고 TV 시리즈 "오만과 편견", "엠마" 등을 쓴 제인 오스틴 전문가 앤드류 데이비스와의 공동 작업이어서 이전 영화들만큼 커티스의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커티스는 자신의 장기인 유머 감각을 영화 속에 심어 넣어 책과는 다른 영화의 매력을 만들어내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까지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자 이제 워킹 타이틀에서 만든 로맨틱 코미디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리차드 커티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감독은 모두 다른 대신, 리차드 커티스라는 각본가가 이들 영화들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었던 것. 그리고  2003년 리차드 커티스는 각본가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메가폰을 잡은 감독 데뷔작 <러브 액츄얼리>를 선보인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끝낸 후 리차드 커티스는 다음 번에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하다가 자신이 재밌게 본 영화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머리 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영화는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들. 커티스는 <내쉬빌>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고 있었다. 그리고 우디 앨런의 <한나와 그 자매들>, <범죄와 비행>, 웨인 왕의 <스모크>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들이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해 다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된 커티스는 이런 영화와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탄생한 <러브 액츄얼리>는 무려 9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복잡한 이야기이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리차드 커티스는  남녀간의 달콤한 사랑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랑을 담아낸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의 가슴 아픈 짝사랑. 아픈 오빠를 돌보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고 마는 여자와 남편의 불륜에 괴로워하는 아내의 이야기. 10대 소년의 첫사랑이 담겨 있는가 하면, 국경을 초월한 사랑과 신분을 넘어선 사랑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러브 액츄얼리>에는 사랑의 모든 측면이 담겨있지만, 리차드 커티스는 처음부터 그것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2000년 연말을 가족들과 보내던 리차드 커티스는 그 당시 등에 통증이 있어 매일 한 시간씩 걸어야 했고 그렇게 걷는 동안 떠올린 이야기들이 <러브 액츄얼리>의 바탕이 되었다고. 원래는 20개 정도의 이야기에 5시간 반정도의 분량이라는 것이 커티스의 회상. '십대의 사랑과 중년의 사랑을 함께 다뤄야 해' 같은 강박관념은 전혀 없었고 그가 바란 유일한 것은 사랑의 즐거움과 고통의 골고루 포함되기를 원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연말이 되면 싱글이든 커플이든 감정이 고조되기 마련이다. 나는 멋진 크리스마스 뿐 아니라 최악의 크리스마스도 여러 번 맞이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러브 액츄얼리>를 통해 하고 싶었다"는 것이 커티스의 설명이다.

    커티스가 최고의 각본가이긴 하지만 연출에서도 제몫을 해낼 수 있을까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커티스는 이런 우려를 일축시키며 이전의 영화들보다 훨씬 멋진 로맨틱 코미디를 완성해낸다. 리차드 커티스의 영화 속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휴 그랜트는 각본과 감독이 다를 경우, 영화 속에서 각본가의 메시지가 감독의 메시지가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각본과 감독이 한 사람일 경우가 좋은 경우가 많고 <러브 액츄얼리>가 바로 그런 경우라면서 커티스의 감독 변신을 환영했다. 무서운 교장선생님 같이 구는 감독들 대신, 리차드 커티스와 작업을 하게 되어 더 재미가 있는 것을 기대했다는 휴 그랜트는 그러나 커티스가 더 까다롭게 굴어 차라리 우디 앨런과 일하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그러면서도 휴 그랜트는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편집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오랜 시간을 편집실에서 보낸 리차드 커티스는 이번 영화에서 뛰어난 편집 감각을 보여주었다면서 오랜 단짝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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