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이 주는 몇 안 되는 행복 by malick


춘천 책과인쇄박물관 엽서 만들기 체험에서 쓴 문구.
출처는 아래 글.

 제  목:11월을 위해 아껴둔 음악들..                
 보낸이:김혜리  (imagolog)  1993-11-17 21:26  조회:1564

11월의 풍경에 BGM으로 어울릴 만한 음악들을 늘어놓아 볼께요.
낮은 채도로 탈색된 거리에서 
차고 투명한 햇빛을 보고 냄새맡고 느끼면서 
이 곡들을 듣는 느낌도 살아있음이 주는 몇 안 되는 행복 중에 
하나입니다.

1.AMMONIA AVENUE   - ALAN PARSONS PROJECT
  최후의 심판? 핵 전쟁? 어쨌든 거대한 그 무엇이 세계를 휩쓸어버린
  후에도 우주가 운행을 계속한다면,폐허 위에 아침 햇살이 조용히
  퍼져나가는 순간이 있겠지요.바로 그 느낌입니다.

2.MAD WORLD  -TEARS FOR FEARS
  미국과 우리 나라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앨범 <SONGS FROM THE
  BIG CHAIR > 이전에 나온 <THE HURTING>에 실린 곡입니다.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고 근 10년을 잊지 못하다가 최근에 구했습니다.앨범 쟈켓
  도 좋아요.온통 하얀 쟈켓의 오른쪽 구석에 꼬마가 무릎을 세우고 
  웅크리고 있습니다.미친 세상을 보기 싫다는 말을 온몸으로 하면서..
  이건 아마 추워서 썰렁해진 서울랜드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귀에 
  꽂고 듣는다면 멋질거예요.그들의 건조한 목소리와 황량하게 내려다
  보이는 공원은 잘 어울리겠지요.단,롯데월드는 절대 안 됩니다.아니,
  서울랜드에서 들으면 그들과 함께 세상을 조롱하는 기분이 들거고
  롯데월드에서 들으면 그들이 조롱하는 미친 대열의 일부가 된 기분이
  들 거예요.선택은 자유.<SONGS..>에서 I BELIEVE도 추천.

3.THE ONLY WAY  -EMERSON LAKE & PALMER 
  <TARKUS>에 있는 곡.바람끝이 매운 날 북적거리는 종로나 명동성당이
  보이는 곳에서 듣고 있으면 가슴에 묵직한 돌이 얹히는 것 같은 곡입
  니다.오르간 소리로 시작하는 신에게 보내는 항의랄까요?

4.OH,MY LOVE -JOHN LENNON
  중학교 때 공예 실기시간이 크리스머스 이브였어요.빵집 딸인 친구
  가 케씐을 준비하고 놀 준비를 완벽히 해서 선생님의 거절을 원천봉
  쇄했죠.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대수롭지 않은 일에 화를 잘 내시는 
  그저 평범한 분이셨어요.도무지 말이 통할 것 같지않은 어른들이란 
  어디에나 가득하고 그러기에 개인으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그냥 '어른'
  이라는 경멸스런 이름으로 뭉뚱그려지쟎아요.그냥 그 중 한 사람인
  선생님이었죠.어쨌거나 공예실-흙덩이가 여기저기 쌓여있는 지하실-
  의 불을 모두 끄고 케씐의 촛불만 켰어요.그 지저분한 곳이 요술처럼
  딴 곳이 되더군요.영화에서 본 2차대전 때 대피소 같기도 하고 원시
  기독교인들의 예배소 같기도 하구요.예의상 선생님께 한 곡을 청했는
  데 그 때 선생님이 볼이 발그레해지셔서 이 노래를 부르셨어요.떠듬
  떠듬 이 노래를 부르는 짧은 동안 선생님은 '어른'의 얼굴을 하지 
  않으셨어요.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이 거기에 있었
  습니다.불이 켜지자 선생님은 익숙한 표정으로 돌아오셨고,그 해에도
  제 공예점수는 나빴지만 저는 덕분에 사물과 인간을 좀더 찬찬히 보 
  게 되었고,누군가나 무언가를 미워할 때에는 그 속에 제 안의 한 부
  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데미안>에 있듯이
  내 안에 없는 걸 증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구요.

 5.정녕 그대를 -김 수철

 6.CALLING OCCUPANT INTERPLANETARY-CRAFT  -KLAATU

  우주를 느끼게 하는 음악입니다.새벽 3시쯤 달과 별이 또렷할 때 들어
  보세요.어느날 밤인가 아마추어 천문반 1학년들이 도서관 앞에 망원경
  을 설치하고 권하길래 들여다보았는데 꼭 별들이 말을 거는 것 같았
  어요.지구의 대기권 밖에서 누군가가 지쳐빠진 내 온 몸의 신경을
  가닥가닥 새롭게 일깨워주는 느낌을 주는 곡입니다.

 7.SOMEBODY  그리고 BLASPHEMOUS RUMOURS  -DEPECHE MODE 

   <SOME GREAT REWARD> 이 앨범은 보이면 사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동생이 PEOPLE ARE PEOPLE 때문에 사온 판이었고 별 관심이 없
   었는데, 우연히 들어보니 PEOPLE..이 최악의 곡이고 나머지가 
   모두 몹시 아름다왔어요.이 형용사가 제격이 아니라고 생각하시
   겠지만.왠지,감정을 드러내놓고 '나 이렇게 슬퍼요'하고 광고
   하는 것 같은 음악은 감성마저 틀에 박아 상품화하고,끝내는 
   세상을 뻔하게 만드는 것 같아 싫어집니다.   

 8.STATIONARY TRAVELLER
   -AFTER WORDS-LONG GOODBYES       -CAMEL 
  
   낙타 팬이 많으실 줄 아는데 굳이 제 쓸데없는 객설로 누를 끼치지
   않겠습니다.그런데 CAMEL이라는 담배도 이들처럼 향기로운가요?

 9.IS THERE ANYBODY OUT THERE? 그리고 GOODBYE CRUEL WORLD  
                                     -PINK FLOYD

   문득 켠 라디오에서 IS THERE ANYBODY OUT THERE? 하는 슬픈 음성이
   흘러나왔고,그 소리는 밤새 귓가에서 웅웅거렸습니다.중학교 때 버
   스 정류장 근처에 해적판을 취급하는 가게가 하나 있어서 쟈켓은 늘
   구경할 수 있었던 <THE WALL>이었죠.운이 좋으시다면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알란 파커의 <THE WALL>도 구하실 수 있겠지요.ANOTHER
   BRICK IN THE WALL과 함께 통조림이 되어가던 학생들이 학교와 권위
   를 불사르고 파괴하는 장면은 우리나라 중등교육에 시달린
   젊은이들이라면 카타르시스로 눈물이 핑 돌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지요.

 10.WELCOME HOME(SANATORIUM)   -METALLICA

   제목 탓인지 <마의 산>이 자꾸 떠오르는 곡입니다.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아직도 제게 희망이라기보다 부담이지만.

                                   
                    ..저,이제 갈께요.한번쯤 더 써야할지도 모르겠네요.

1 2 3 4 5 6 7 8 9 10 다음